관측 기록 · 138억 년째
물리학이 주는 위안에 대하여
파동이면서 입자, 결정론이면서 확률적, 무한하면서 유한. 우주가 이토록 모순으로 가득한데도 138억 년째 계속되고 있다면, 나의 모순도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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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상보성의 원리
모순되는 두 가지가 모두 진실일 수 있다
닐스 보어가 발견한 상보성의 원리. 빛은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하다. 둘 다 진실이다. 관측 방법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마음, 강한 나와 약한 나, 논리적인 나와 감정적인 나. 둘 다 거짓이 아니다. 둘 다 나다. 단지 같은 순간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일관성을 요구한다. 확고해야 한다고, 모순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양자역학은 정반대를 말한다. 모순이야말로 본질이라고. 파동성과 입자성이 둘 다 있어야 빛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듯이, 나의 모든 면을 받아들여야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반대되는 것들의 일치 속에서 진리를 찾는다.닐스 보어
나의 모순된 마음들. 그건 약점이 아니다. 그게 나를 완전하게 만든다.
§ 02
슈뢰딩거의 고양이
관측되지 않은 나의 삶
상자 안의 고양이는 살아있음과 죽음이 중첩되어 있다.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내 삶도 그렇다. 미래, 역할, 행복, 결정. 전부 아직 열리지 않은 상자 안에 있다. 무한한 가능성과 고통이 겹쳐진 상태로.
눌러서 관측 — 되돌릴 수 없음
중첩은 괴롭다. 행복한 나와 무너진 나, 강한 나와 작은 나가 동시에 존재한다. 미쳐버릴 것 같다. 하지만 중첩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살아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관측 전까지는 어떤 결과도 가능하다. 무한한 자유의 상태다.
상자가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건, 선택의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모든 게 열려 있다. 그리고 그 상자를 열 사람은 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나의 상자를 열 권리를 가지고 있다.
§ 03
양자 얽힘
한 번 연결된 것들
두 입자가 한 번 상호작용하면, 우주 반대편에 떨어뜨려놔도 한쪽을 측정하는 순간 다른 쪽의 상태가 즉각 결정된다.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 아니, 속도라는 말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 동시에 일어난다.
아인슈타인은 이걸 으스스한 원격작용이라 부르며 거부했다. 하지만 실험으로 증명됐다. 우주는 정말로 이렇게 작동한다.
5년 가까운 시간, 수많은 순간들, 서로에게 새겨진 흔적들. 물리적으로 떨어져도, 헤어져도, 그 연결은 남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얽힘은 측정으로 끊어진다.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양자적 특성이 사라지고 고전적 세계로 돌아간다. 결어긋남이라고 부른다.
선택하는 순간, 얽힘에서 자유로워진다.
§ 04
두 사람
절망과 수용
아인슈타인은 세계가 결정론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완벽한 질서와 예측 가능성을 원했다. 보어는 불확정성이 자연의 본질이라 답했다. 양자 세계는 원래 확률적이니, 수용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라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신에게 참견하지 말라.
둘 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둘 다 틀린 말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의 절망은 통제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보어의 수용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용기였다. 나는 지금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 왜 내 삶은 이렇게 풀리지가 않지, 라는 절망과. 이게 내 삶이구나, 라는 수용을.
§ 05
시간의 화살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깨진 컵은 저절로 다시 붙지 않는다. 섞인 물감은 저절로 분리되지 않는다. 식은 커피는 저절로 뜨거워지지 않는다. 왜일까.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 곧 시간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친 질문이 나온다. 물리 법칙이 시간에 대해 대칭적이라면, 영화를 거꾸로 돌려도 법칙이 여전히 맞다면, 우리는 왜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느낄까.
답은 엔트로피다. 우주는 아주 낮은 엔트로피에서 시작했고 그 이후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게 시간의 화살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깨진 것은 다시 붙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이 중요하다.
§ 06
먼저 본 사람
볼츠만의 비극
루트비히 볼츠만. 엔트로피를 통계적으로 정의한 천재. 그의 묘비에는 공식 하나가 새겨져 있다.
당시 많은 물리학자들이 원자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볼츠만은 평생 외로운 싸움을 했다. 1906년,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 직후, 원자의 존재가 증명됐다.
진리를 먼저 본 사람은 외롭다. 세상이 따라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나도 지금 남들보다 먼저 보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외로운 것이다.
§ 07
휘어진 시공간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빛의 속도는 모든 관측자에게 동일하다. 이 하나의 사실에서 이상한 결과가 나온다. 빠르게 움직이면 시간이 느려진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중력은 힘이 아니라 시공간의 휘어짐이다. 질량이 있으면 시공간이 휘어지고, 그 휘어진 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우리가 중력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너무 무거운 별이 중력 붕괴하면 시공간이 무한대로 휘어진다. 빛조차 탈출할 수 없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면 시간과 공간의 역할이 뒤바뀐다. 안으로 가는 방향이 시간의 미래 방향이 된다. 되돌아오는 건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과 같다. 불가능하다.
§ 08
우주의 운명
약 138억 년 전, 무한히 작고 뜨거운 점에서 우주가 시작됐다. 초기 우주는 엄청나게 낮은 엔트로피, 완벽한 질서, 균일한 에너지 분포였다.
1964년, 펜지어스와 윌슨이 안테나에서 이상한 잡음을 발견했다. 처음엔 비둘기 똥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빅뱅의 메아리였다. 138억 년 전의 빛이 식어서 마이크로파가 된 것. 우주 전체를 채운 2.725 K의 온기. 우주의 아기 사진이다.
1998년, 충격적인 발견이 있었다. 우주 팽창이 가속되고 있다. 중력 때문에 느려져야 하는데 오히려 빨라지고 있다. 뭔가가 우주를 밀어내고 있다. 암흑 에너지 68%, 암흑 물질 27%. 합치면 95%. 우리가 아는 건 우주의 5%뿐이다.
가장 가능성 높은 미래는 열죽음이다. 영원히 팽창한다. 모든 별이 꺼진다. 블랙홀도 증발한다. 10의 100제곱 년쯤 뒤, 마지막 블랙홀도 사라지고 우주는 균일한 에너지 바다가 된다. 엔트로피 최대. 변화가 없으면 시간도 없다.
§ 09
그들도 외로웠다
아인슈타인
평생 통합장 이론을 찾으려 했고, 끝내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학계에서 고립됐다. 말년의 그는 외로웠다. 괴델과 산책하며 우주와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틀렸어도 그의 탐구는 아름다웠다.
파인만
봉고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농담을 하면서 양자전기역학을 완성했고 경로 적분을 만들었다. 진지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었다. 물리학은 춤을 추는 것과 같다고, 왜 춤을 추냐고 묻는 순간 이미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슈뢰딩거
파동 방정식을 발견하고 고양이 역설을 제시했다. 그리고 생명이 무엇인지 묻는 책을 썼다. 그 책이 왓슨과 크릭에게 영감을 줘서 DNA 이중나선 발견으로 이어졌다. 물리학이 생물학을 낳았다.
호킹
21살에 2년 시한부 선고를 받고 76살까지 살았다. 블랙홀 복사를 발견했고 시간의 역사를 썼다.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우주를 여행했고 시공간의 비밀을 밝혔다. 한계는 육체에만 있었다.
§ 10 — 11
두 개의 자
우주적 관점과 개인적 관점
우주는 138억 년이다. 인간의 수명은 고작 80년. 우주적 스케일에서 보면 나의 29년은 순간이다. 5년도 찰나다. 지금의 고민도 한순간이다.
근데 동시에, 이 순간이 나에게는 전부다.
양자역학처럼 상보적이다. 우주적으로 무의미하면서 개인적으로 절대적이다. 둘 다 진실이다. 그래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되, 동시에 진지하게 선택해야 한다. 둘 다 맞다.
§ 12 — 13
관측이라는 말
그리고 불확정성을 받아들이는 것
물리학이 말하는 관측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다. 상호작용이고, 선택이고, 책임이다. 상자를 열면 중첩이 붕괴되고 하나의 현실이 확정된다.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근데 중요한 건 이거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그건 다 나다. 상자를 열었더니 헤어짐이 나왔다면 그것도 나의 진실이었다. 함께 가기가 나왔다면 그것도 나의 진실이었다. 둘 다 가능성이었고 둘 다 진짜였다.
완벽한 확실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 확실성을 원하면서 가능성을 놓치기도 싫어한다. 이것도 상보성이다. 둘 다 진실이다.
괴델은 어떤 체계도 자기 자신의 일관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모순 없는 완벽한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괴델은 불완전성을 증명하고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통합 이론을 찾으려 했고 실패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의미 있었다.
완벽한 답이 없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 14
나에게
모순되는 두 가지가 모두 진실일 수 있다. 사랑하고 싶으면서 떠나고 싶은 마음, 강하면서 약한 자신, 논리적이면서 감정적인 모습. 다 진짜다. 다 나다. 그리고 그런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상자를 열 준비가 됐든 안 됐든 서두르지 말자. 준비됐을 때 내가 선택할 것이다. 그게 언제든, 어떤 선택이든, 그건 진짜 나의 선택일 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선택한 길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가다. 솔직할 수 있는가. 취약성을 드러낼 용기를 가질 수 있는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 이게 기준이다.
당신의 상자
아직 아무도 열지 않았습니다.
물리학이 주는 진짜 선물은 모순 없는 세계가 아니다.
모순이 본질인 세계에서도 우리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